예전부터 SF계의 명작으로 불리는 컨택트를 봤다. 예전에 알쓸인잡에서 김상욱 교수가 양자역학을 설명해 주면서, 이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은 양자역학의 메커니즘으로 대화를 한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았었다.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볼 수 있는 생명체를 상대로 인간이 소통을 하려 하니 인간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했었나.. 그래서 언어의 형태가 원형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냥 그 정도만 알고 있는 채로 이 영화를 봤다.
[줄거리 / 소감] 영화는 지구에 8개의 거대한 물체가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미국, 중국, 일본,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 이 물체가 떨어졌고, 각국은 나름대로 이것이 뭔지, 여기에 떨어진 이유가 뭔지 알아내려 애쓴다. 미국의 본부에 초빙된 언어학자 뱅크스 박사가 주인공이고 그녀가 이들과 소통하며 그 과정에서 얻은 그들의 언어를 알아내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은 게 전체 줄거리다.
결론적으로 뱅크스 박사는 이 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었다. 그녀는 이들과 이들의 언어로 소통하며 이들의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중점적으로 다뤄지는 이론이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인 가설) 외계 생명체들은 이미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알 수 있었고 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뱅크스 박사는 이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영화에선 이것을 '무기'라고 부르고 뱅크스 박사는 이 '무기'를 이용해 인류의 어리석은 선택을 막을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사실 영화의 연출 스타일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워낙에 결론을 빨리 알고 싶은 급한 성격이기도 해서 그런지 잔잔하고 천천히 전개되는 영화에 계속 집중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아주 많이 흥미로웠다. 양자역학이 철학과도 많은 연관이 있는 만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내게도 여러 가지 질문이 많이 주어졌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불안은 인간을 어디까지 어리석게 만드는가? 지구에 8개의 거대한 물체가 나타나는 것만으로 인류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다. 그 물체는 움직이지도, 공격하지도 않지만 그저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적대감을 품는다. 그것을 직접 연구하고 대응하는 기관의 사람들도 불안에 떨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은 더욱 불확실성의 공포에 빠진다. 영화를 보면서, 만약 한국에만 그 괴상한 거대 물체가 떨어졌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 잠시 빠졌는데.. 이내 상상하는 것을 멈췄다. 최악의 것들만 떠올랐기 때문에..ㅋ
미래를 안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가 겪는 불행과 행복은 모두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미래를 알 수 없으니 그저 살아가고, 예측하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하거나 환희한다. 만약 당장 10초 후의 미래부터 싹 다 알 수 있다면 우린 더 행복해질까? 지금의 불안을 잠재울까 혹은 증폭시킬까? 만약 내가 1년 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사실과 10년 후에 로또에 당첨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난 어떤 태도로 살아갈까?
이 영화에서도 동일한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며 끝난다. 영화 초반부터 뱅크스 박사가 마치 딸을 잃은 여자처럼 묘사되지만 실은 미래에 딸을 잃는다는 것을 암시하는 연출이었다. 과연 나는 딸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같은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 딸을 낳게 될까? 이미 알고있는 채로 딸을 보낸다면 과연 그 슬픔은 반으로 줄어들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SF 영화였다. 외계인은 그저 장치일 뿐, 그것으로 인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말하고 싶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내가 지금 내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난 지금을 어떻게 살까? 영화의 뱅크스 박사처럼 미래를 알아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되는 거라면, 차라리 모르는 채로 기대를 품으며 낭만 있게(어쩌면 멍청하게) 살아가는 것이 영리한 순응보다 더 낫지 않을까?라는 이런저런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영화였다.